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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논두렁 아이돌 - 12화 그녀의 과거

by °마로° 2025. 8. 19.

 

 

12화. 그녀의 과거

 

 

교실 안, 1교시가 시작되기 전이라 교실의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웃고 떠들고 장난치는 학생들과 교실 뒤쪽에선 몇몇의 학생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덩치 좋은 녀석이 비쩍 마른 녀석에게 힘껏 공을 던졌고 비쩍이가 유연하게
공을 피하자, 공이 벽을 맞고 의자에 앉아 있던 찬수의 다리에 맞았다.
찬수가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자 공놀이를 하던 그들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아.... 미안해 찬수야.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덩치가 쫄은 얼굴로 찬수에게 다가와 변명을 했다.

"나가서 해. 공놀이."

찬수가 나지막하게 한마디를 하자, 옆에 있던 콘다가 까불거리는 목소리로 따라 했다.

"나가서 해. 공놀이."

"어.... 그래."

덩치가 얼른 공을 주워 들고 같이 놀던 녀석들에게 그만하자는 신호를 줬다.
그러자 전원 자리로 뿔뿔이 흩어졌다.

"색히들이 정신 사납게 아침부터... 쯧..."

콘다가 구시렁대며 아까부터 보고 있던 핸드폰을 다시 봤다.
핸드폰 속 채림의 인스타에는 온갖 협찬을 받은 듯한 옷과 액세서리를
착용한 사진들이 가득했다.
또한 고등학생에게 어울리지 않는 명품백과 신발들을 착용한 사진까지도 많이 있었다.

"죽인다.... 나도 유튜브나 할까?"

"어. 해."

콘다의 말에 찬수가 귀찮다는 듯이 얼굴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아이씨, 나 진지해. 나도 50만 유튜버는 돼야 채림이랑 급이 좀 맞지. 

지금의 난 채림이에게 너무 자격 미달이야...."

우는소리를 하는 콘다에게 찬수가 진지하게 물었다.

"걔가 왜 좋은데? 이뻐서? 돈이 많아서?"

"....둘 다."

'후....' 그럼 그렇지 하는 찬수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몰라.... 좋은데 이유가 있겠냐? 그냥 가슴이 막 뜨거워지고 안고 싶어 죽겠어."

찬수는 헛소리만 하던 콘다에게서 이 말만은 순수한 진실인 것처럼 느껴져
피식 웃음이 났다.

"응원한다."

'응??' 찬수의 예상외 대답에 콘다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같은 시각, 서진의 집 안. 가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인터폰 속 도준을 보고 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역시나 도준은 활짝 웃는 얼굴이었다.
가영이 마지못해 현관문을 열어주자, 도준이 양손 가득 담긴 봉지를 가영에게 건네곤
불쑥 집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아이구 서진이 어머님 오랜만입니다. 이건 별거 아니지만 받으시구."

"아,아니.... 그렇게 막 들어 오시면...."

"딸기 입니다. 제가 직접 밭에서 키운. 서진이는 없습니까? 운동?"

'하아....' 태연하게 거실 소파로 가서 앉은 도준을 벌써부터 피곤하다는 듯 가영이 바라봤다.


잠시 후, 가영이 접시에 담아 온 딸기를 도준의 앞쪽 테이블에 내려두곤 

도준과 멀찍이 소파에 앉았다.

"오늘은 또 무슨 용무예요?"

"아, 별일 아닙니다. 그저 딸기나 전해드리려고.... 그러고 보니 서진이 어머님은

딸기를 닮으신 듯합니다. 하하하하."

"............"

싸늘한 분위기를 감지하곤 딸기 접시를 가지고 가영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이것 좀 드시죠. 딸기가 아주 답니다."

"아,알았으니까.... 가까이 오진 말아요."

경계하는 가영에게 도준이 히죽 웃으며 딸기 하나를 집어 건넸다.
가영은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예의상 받아서 먹는데 정말로 딸기가 너무 맛있었다.

"뭐예요? 이걸 직접 키운 거라구요?"

"예. 저희 회사 근처 밭에서 키운 겁니다. 시간 날 때마다 애지중지 제가 키운 겁니다.
맛있죠?"

가영은 예상외의 딸기 맛에 도준이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더니....'

"언제 한번 놀러 오세요. 여름에는 수박도 있습니다. 하하하"

"....차라리 농사나 지으시지."

가영이 들릴 듯 말 듯 하게 속마음을 말했다.

"그.... 서진이는 왜 학교를 그만두었을까요?"

도준은 뜬금없지만 그 전부터 궁금했던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그러자 가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 그저 궁금해서 여쭤본 겁니다. 굳이 대답하기 어려우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

가영은 잠시 고민을 했지만 딸을 맡기기로 했으니 도준을 믿어보기로 했다.

".....서진이에겐 비밀로 해주세요."


서진이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무렵의 일이었다.
아빠의 사건으로 인해 서진은 늘 말이 없고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교실 한쪽 구석에 박혀 눈에 띄길 원치 않던 아이였지만 어둠 속의 작은 빛처럼
서진은 이상하게 자꾸 눈에 띄는 얼굴이었다.
아이들은 다가가려고 했지만 서진은 거리를 주지 않았고 스스로의 벽을 만들어
자신을 가둬버렸다.

그렇게 벽을 만들어 자신을 보호했지만 결국 얼마 못 가 벽을 쉽게 깨부수는 아이들로 인해
서진의 학창 시절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들은 잡은 먹잇감을 절대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상대가 완전히 뻗어 눈을 감아도 그 자리를 지키며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상대를 드러눕히고 기다리고 드러눕혔다.
먹이사슬의 최하위. 토끼가 사자에게 유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동물원을 탈출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괴롭힘을 견디다 못한 서진은 결국 제 발로 학교를 나와버렸다.
떠나간 자리는 금세 다른 이가 채우게 되고 누구도 서진을 그리워하거나 궁금해하지 않았다.

학교를 나온 이후로 서진은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았고, 자신을 더욱 감춰버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고는 옷도 남자처럼 입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나를 부정하듯이.

"선생님. 제가 이 이야기를 해드린 건요, 제 딸이 최근 들어서 조금 밝아졌기 때문이에요.
아무래도 선생님 때문이겠죠? 그러니까 서진이, 잘 좀 돌봐주세요.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도준은 어느 정도 사건 사고가 있었을 거라 예상했지만 가영에게 사실을 전해 듣고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실종과 학폭을 한꺼번에 경험한다는 것은 결코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일이라 도준은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나 폭력에 시달렸으면 찬수의 작은 터치에도 패닉에 빠졌겠는가.

".....예. 제가 꼭 그렇게 할게요."

도준은 가영의 부탁에 커다란 책임감 같은 것이 가슴 속에 생겨났다.
팀이 잘 되고 못 되고를 떠나 서진이 절대 상처 받지 않게 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