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이판사판이다
잠시 후, 도준이 소파에 멤버 모두를 앉혀 놓았다.
모두가 침묵한 채 표정이 어두웠지만 지원만은 강경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당장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길 바라며 그저 가만히 도준을 바라봤다.
"니들 마음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우리 지금까지 잘해 왔잖아? 조금만 더 기다리면..."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 말에 지원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고,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났다.
"대표님, 저희 벌써 열아홉이에요.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구요.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하라는 거예요?"
"......."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도준이 아무런 말도 못 하자, 결국 지원이 실망한 표정으로
도준의 옆을 지나쳐 밖으로 향했다.
"찾았어. 찾았다고!"
도준의 말에 사무실을 나가려던 지원이 멈춰 섰다.
멤버들 역시 하나같이 놀란 얼굴로 도준을 바라보았다.
"메인보컬, 드디어 찾았다고."
지원이 뒤돌아 도준을 바라봤다.
"확실해요?"
"사실 얼마 전까지 확실하지 않아서 너희에게 말을 안 한 거야.
다음 주에 회사로 데려와서 내가 정식으로 소개 시켜줄게.
너희도 알잖아, 내가 완벽주의자인 거."
소파에 앉아 있던 멤버들이 도준의 말에 서로를 보며 주먹을 쥐며 기뻐했다.
단, 지원만이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도준을 바라볼 뿐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이판사판이다."
겨우 웃음을 짓고 있던 도준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슬쩍 이를 악물었다.
그날 밤. 도준은 다시 가영의 집을 찾아갔다.
똑똑똑 도준이 가영의 현관문을 노크했다.
물론, 벨을 이미 누른 상태였지만 한참을 기다려봐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도 없나?' 도준이 현관문에 바짝 붙어 귀를 가져다 댔다.
같은 시각, 집 안에서는 가영과 서진이 인터폰 앞에서 도준을 보고 있었다.
조용히, 숨소리마저 죽인 채로.
"저 사람 왜 안 가?"
가영이 인상을 찌푸리며 서진에게 속삭이자, 서진이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인터폰 속의 도준은 아까부터 누가 봐도 어색하고 억지로 만들어낸 그런,
사람 좋은 미소를 유지 중이었다.
"....저 웃는 것 좀 봐. 살짝 맛이 간 거 같은데?“
뚫어지게 인터폰을 보던 가영이 마치 사이코패스를 떠올리며 혼잣말을 했다.
그때 도준이 인터폰 카메라로 눈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인터폰 화면 가득 들어오는 도준의 눈알.
‘아악!’ 그걸 본 가영이 질겁해 소릴 질렀다. 그러자 서진이 쿡 하고 웃으며 검지를 입술에
대며 조용하라는 신호를 줬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서진이 어머니임.' '똑똑똑똑'
밖에서 도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미쳤나 봐. 그냥 경찰에 신고할까?"
가영이 불안한 표정으로 서진에게 묻는데 갑자기 서진이 몸을 돌려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너 어디 가니? 너... 안 돼!"
가영의 말을 뒤로하고 서진이 현관 앞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
그러자 한 손에 큰 봉다리를 든 도준이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이고 서진이 집에 있었구나? 아저씨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엄마가 조용히 있으라고"
어느새 다가온 가영이 손으로 서진의 입을 급하게 막았다.
"....어쩐 일이세요? 이 늦은 시각에."
"아, 이거..."
도준이 경계심 가득한 얼굴을 한 가영에게 대답 대신 빵이 가득 담긴 봉다리를
들어 보였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 온 서진이 침대에 걸터앉아 봉다리에서 빵을 하나씩 꺼냈다.
"뭐야, 전부 팥빵이네."
서진이 실망한 얼굴로 도준을 쳐다봤다.
"그, 안에도 잘 찾아봐. 꽈배기도 있어."
조금 더 뒤적이니 정말 꽈배기가 나왔다.
‘오...!’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니 팥이나 꽈배기나 싶었다.
18세 고등학생에게 팥빵과 꽈배기라니... 서진이 작게 한숨을 쉬며
들고 있던 빵을 내려놓았다.
"저기, 서진아. 아저씨가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어렵게 기회를 엿보던 도준이 말을 꺼냈다.
“뭔데요?”
“너... 우리 팀에 들어와라.”
"....그게 무슨 말이에요?"
도준은 분명 지난밤 남돌을 만든다고 했었다.
그런데 자신을 남돌 팀에 들어오라니.
도통 도준이 뭔 소리를 하는지 서진은 이해가 안 됐다.
크흠... 도준이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정돈했다.
"서진아, 잘 들어. 니가 남장을 하면 아무도"
"나가요! 나가!"
서진이 울긋불긋해진 얼굴로 소리를 꽥 질러 도준의 말을 끊었다.
"아니... 그러니까... 니가 남자 같으니까... 그... 변신을 하면... 남자가 여자로...
아니 여자가 남자로..."
서진의 반응에 당황한 도준이 횡설수설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었다.
"엄마아아!"
참다못한 서진이 소리를 지르며 방을 뛰쳐나갔다.
“.....돌겠네.”
망연자실하게 혼자 남은 도준이 좌절의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파트 밖, 가영의 집에서 쫓겨나듯 나온 도준이 구석진 곳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하란 거예요?'
자꾸만 도준의 머릿속에서 지원의 말이 떠나질 않았다.
후... 도준이 담배 연기와 한숨을 섞어 내뱉었다.
다음 주까지 데려간다고 했는데... 시간이 없다... 무슨 수를 써야 하지...?
이제와서 아무나 메인보컬이라며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법은 서진 뿐이었다.
도준이 다 태운 담배를 검지로 털어 끄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자 시환이었다.
“어, 우리 시환이. 무슨 일이야?”
도준이 애써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거짓말이죠? 오늘 했던 말... 다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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