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드디어 찾았다
포항의 어느 해변.
'2025 포항 청소년 해변 축제' 현수막이 높이 걸려있다.
현수막 아래로는 제법 커다랗고 잘 세팅된 무대에서 아이들이 춤과 노래로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 중이었다.
지방의 축제치고 제법 큰 축제인 듯 400석 정도의 간이 의자에 빼곡히 사람들이
앉아 있고 맨 앞줄에 검은색 슈트를 차려입은 전도준이 의자에 앉아 공연을 보고 있다.
약 10년 전, 도준은 오렌지카스텔라 라는 여돌을 성공시킨 연예기획사의 대표였다.
안타깝게도 오렌지카스텔라는 딱 한 곡만 히트하고 망해버린 그룹이 됐지만.
그 후로 도준은 몇 개의 아이돌 그룹을 더 만들어 보았지만 결국 아무 관심도 끌지 못한 채
사라지는 최후를 맞이했었다.
그리고 그는 다신 회복할 수 없는 완전한 개털이 되었다.
그래선지 나름 슈트를 차려입었지만 도준에게선 숨길 수 없는 빈티가 곳곳에 묻어났다.
쿵쾅대는 음악 소리와 춤추며 노래하는 아이들.
무대 주위로 길게 늘어선 푸드트럭과 북적거리는 사람들.
한쪽에선 폭죽이 연이어 터지며 축제의 분위기가 한껏 이어졌다.
어느덧 사회자가 마지막 팀이라는 소개를 하자, 5명의 남자 고등학생이 옷을
깔맞춰 입고 무대에 올랐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도준이 의자를 당겨 앉았다.
마지막 팀의 공연은 생각보다 훨씬 형편없었다.
고음은 올라가다 찢어졌고 춤은 절도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원 인물이 별로였다.
도준은 포항에서 유명한 아이들이 있다는 소문에 아침부터 준비해 지방까지 왔지만 결국
이번에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그 날 밤. 집으로 가기 위해 어두컴컴해진 고속도로를 도준이 운전하고 있었다.
나름 기대를 품고 먼 길을 왔지만 또 다시 헛걸음을 했다는 사실에 도준의 표정은 어두웠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도준. 곧이어 오디오를 틀었다.
'찬란했던 그 시절의 너와 나. 그 때로 렛츠고. 타임머신 타고 가요'
오렌지카스텔라의 노래가 흘러 나오자 도준은 추억에 잠기는 표정을 지었다.
'후... 도대체 어디 있냐고... 마이프레셔스...'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도준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한참을 달려 자신의 오래된 아파트에 도착한 도준이 주차장에 차를 댔다.
차 역시도 오래된 연식의 승합차지만 도준에 흥망성쇠를 함께한 추억이자 역사인 차였다.
주차를 마치 도준이 차에서 내리고 터덜터덜 걸으며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샤워를 마치고 도준이 트렁크 팬티 차림으로 거실로 나왔다.
작은 평수의 거실은 형광등 하나가 나가서 어두침침했다.
오래된 40인치 TV와 가죽이 헤진 소파, 길에서 주워 온 듯한 몰골의 진열장이
거실을 채우고 있었다.
머리를 털며 진열장 앞에 선 도준이 오래전에 받았던 트로피를 추억에 잠기듯 바라보았다.
2014년. 오렌지카스테라의 성공으로 잠시나마 누렸던 영광과 행복.
짧았던 기간이었지만 인기와 부, 모든 것을 맛보았던 도준이었다.
'후... 그때의 일만 없었더라면...'
도준이 눈을 질끈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쿵...쿵...끼긱...
벌써 두 시간이 넘게 층간 소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침대에 누운 지 한참이 지났지만 도준은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었다.
분명 오늘 아침에 본 이삿짐 차량이 원인일 것이라고 도준은 생각했다.
잔뜩 찡그린 얼굴로 시계를 보자 새벽 1시 45분이었다.
아무리 이사를 왔다지만 이 시간까지 시끄러운 것은 절대 참을 수 없는,
아니 참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결국 벌떡 일어난 도준이 잠옷 바람 그대로 방을 나갔다.
쿵쿵쿵. 잔뜩 인상을 쓴 도준이 윗집의 문을 두드렸다.
이미 벨을 누른 상태였지만 도준에게는 나름 일종의 화풀이 같은 행동이었다.
"누구세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40대 초반의 김가영이 문을 열고 나왔다.
샤랄랄라-
흐트러진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도준을 바라보는 가영.
그녀는 마치 90년대 광고 속 연예인처럼 단아하고도 아름다웠다.
도준은 순간 가영의 아름다움에 모든 것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이는 착각을 일으켰다.
".....!! 아, 저는 밑집에 사는 사람입니다. 밤늦게 찾아뵙게 돼서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정신을 겨우 차린 도준이 표정을 싹 바꿔 젠틀하게 인사를 했다.
"어머, 안녕하세요. 시끄러우셔서 오셨구나. 죄송해서 어쩌죠?"
"아닙니다. 이사 오면 다들 그렇죠 뭐. 하하하"
"저희 애가 아직도 짐 정리를 하다 보니..."
여전히 누가 봐도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도준을 뒤로 하고 가영이 서진을 불렀다.
"윤서진. 너 잠깐 나와봐. ...얼른!"
잠시 후 귀찮다는 얼굴로 나온 윤서진이 도준에게 인사를 했다.
"안냐세요."
"어, 반갑다. 난 밑집 아저씨야. 엄마를 닮아서 그런가? 잘생겼네."
"......."
뾰루퉁한 얼굴을 하고는 한 번 더 꾸벅 인사를 하고 서진이 방으로 들어갔다.
"하하하 역시 피는 못 속이나 봅니다. 학교에서 인기가 많겠어요?"
"아... 뭐... 네..."
가영이 어물쩍 대답을 했다.
".........."
서로 할 말이 없어 침묵이 이어지는데 가영은 아까부터 자신을 보며 헤벌쭉 웃고만 있는
도준이 신경 쓰였다.
'뭐야 이 사람... 이상해...'
집으로 돌아온 도준은 다시금 침대에 누워 뜬 눈으로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조금 전 보았던 가영의 생각들로 가득한 상태였다.
나랑 나이는 비슷해 보이는데 저렇게 큰 애가 있네?
몇 살에 결혼을 한 거야?
지금도 저 정도 미모면 소싯적엔 남자 좀 울렸겠는데?
애 아빠는 안 보이던데 혹시?
그럼 나에게도 기회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히죽대는데 이번에는 도준의 귀에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진짜... 후... 참자... 참어... 도준이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노래를 부르는 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 모습은 핑크빛처럼 뜬금없이 찾아왔죠.'
서진의 목소리는 조금 허스키하지만 미성이며 깨끗했다.
마치 남자와 여자 반반을 섞은 듯한 느낌의 목소리.
서진의 노래를 얼마 듣지 않았음에도 도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녀석이다!'
도진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방을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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