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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긴 생각

(웹소설) 논두렁 아이돌 - 5화 논두렁을 가다

by °마로° 2025. 7. 30.

 

 

5화. 논두렁을 가다



그날 밤. 방 안 침대에 반쯤 기대고 누운 서진이 남자 아이돌의 영상을
핸드폰으로 보고 있었다.
잠시 후 방문이 열리며 가영이 사과를 올린 접시를 가지고 들어왔다.
가영이 접시를 서진의 옆에 내려놓는데도 서진은 핸드폰만 볼 뿐이었다.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안 돼."

이미 낮에 서진에게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안 된다고 말했었지만
다시 한번 못을 박기 위해 가영이 말을 꺼냈다.

가영의 말에 서진이 고개만 슬쩍 들어 가영을 바라봤다.

"그 인간 그거 사기꾼이야. 관상을 봐봐. 너 살면서 제일 조심해야 될 인간이
저런 인간이야. 말만 뻔지르르한."

"....누가 한대? 그냥 한 번 보고만 올 거라니까."

무심하게 대답하는 서진을 가영이 답답한 얼굴로 바라보다 침대 걸터앉고서
포크로 사과를 찍어 서진에게 건넸다.

"잘 들어 딸. 세상에는 두 인간이 있어. 엄마 같은 사람. 그리고 너희
아빠 같은 사람. 저기 밑에 집도 너희 아빠 같은 사람이야."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던 서진이 입을 삐죽 내밀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빠 얘기가 왜 나와.... 그리고 나 관심 없어. 아이돌이니, 가수니. 음악은 그냥
취미로 하는 거라고."

".....정말이지?"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가영이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우리 딸. 엄마가 믿을게."

가영이 서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심한 얼굴로 서진이 다시 핸드폰을 보자 가영이 슬쩍 서진의 눈치를 보곤
방을 빠져나갔다.
후... 서진이 작게 한숨 쉬고는 핸드폰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내 안의 슬픔과 아픔은 언제쯤 사라질까. 아니, 존재는 할까 행복과 기쁨이라는 것들은.
매일 밤 기도해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길. 매일 밤 기도해 그대가 내게 돌아 올 수 있길.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대. 간절히 꿈꾸면 이루어진대. 내 간절함이 그대에게 닿기를.
그 간절함이 내게 닿기를 I believe.'

서진이 침대에 걸터앉아 기타를 치며 자작곡을 불렀다.
잔잔한 기타 선율과 애잔한 목소리, 그리고 작은 호흡소리까지도 방 전체를 가득 메웠다.


며칠이 지나고 주말이 되었다. 
운전 중인 도준이 오디오에서 나오는 오렌지카스텔라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카스텔라 주세요 워어어어어 하나 더 주세요 워어어어어"

흥에 겨운 도준과 달리 뒷좌석에 앉은 서진은 조금은 긴장한 얼굴로 창밖을 볼 뿐이었다.
괜히 주머니에서 가영이 준 호신용 스프레이를 꺼내봤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서울의 외곽 어느 곳. 도준의 차가 작은 공터 같은 곳에 멈춰 섰다.
서진과 도준이 차에서 내리자 공터 주변은 논과 밭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었다.

"여,여기가 어디예요?"

주변 풍경에 당황한 표정으로 서진이 물었다.

"멋지지 않니?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단다."

혹여라도 서진이 도망갈까 도준이 잽싸게 어깨동무를 했다.

"여기에.... 회사가 있다구요?"

"그럼. 자, 가봅시다."


두 사람은 어느새 두렁길을 걷고 있었다.
도준의 뒤를 따라 걷는 서진의 얼굴은 이미 사색으로 변해있었다.

'이게 뭐야.... 논두렁 아니야?'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한 얼굴로 조심스레 걷는 서진과 달리 도준은 성큼성큼 잘도
좁은 길을 걸었다.
도저히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결국 서진은 걸음을 멈췄지만 여전히 도준은 아무것도 
모르고 앞으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러다 뭔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도준이 뒤돌아봤고 이미 저만치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는 서진이 보였다.

"서,서진아!! 서진아!!"

도준이 뭐 빠지게 달려가며 멀어지는 서진을 향해 외쳤다.


결국 서진을 붙잡아 온 도준이 회사 앞에 도착해 있었다.
밭에서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컨테이너 여섯 개를 자르고 합치고 해서 만들어 놓은
허울뿐인 회사의 건물. D.J엔터테인먼트였다.
동네 고물상 간판 같은 허접한 간판을 서진이 멍하니 바라봤다.
물론, 팀에 들어갈 거라 생각 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로 허접한 곳에서
자신을 데려가겠다고 그 난리를 피웠다는 것에 서진은 새삼 부끄러움을 느꼈다.

"논두렁.... 컨테이너...."

서진은 혼이 빠져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무실로 두 사람이 들어오자 소파에 앉아 있던 팀원들이 일어나 인사를 했다.
그와 동시에 팀원들이 도준이 데려온 서진을 스캔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는 그저 키가 작은 평범한 남자아이로만 느껴졌다.

"어, 그래. 다 와있었.... 지원이는?"

팀원 중 지원이만 보이지 않았다.

"조금 늦는데요."

팀의 리더인 주형이 대답했다.

"어... 그럼... 자, 여기는 우리 팀의 리더이자 랩을 맡고 있는 이주형.
그리고 여기는 또 마찬가지로 랩과 안무를 맡고 있는 정찬수. 키 크지? 
그리고 우리 팀의... 음... 귀염둥이 엄시환. 보컬이야, 보컬."

도준이 팀원들을 하나씩 손으로 가리키며 쭉 소개해 줬다.
팀원이고 나발이고 별 감흥을 느낄리 없는 서진은 그저 무표정을 유지했다.

"여기는 윤서진. 이제 우리 팀에서 메인보컬을 맡을 아이야. 인사해."

 


이런 논두렁에 끌려온 것도 화가 나는데 벌써부터 메인보컬을 맡을 거라 말하는
도준을 보자 서진은 짜증이 한순간에 밀려들었다.

"....해봐요."

"..........?"

무슨 말인가 싶어 모두가 벙찐 얼굴로 서진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잘하는지, 한 번 해봐요.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