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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긴 생각

(웹소설) 논두렁 아이돌 - 7화 꿈은 꿈일 뿐이야

by °마로° 2025. 8. 1.

 

 

7화. 꿈은 꿈일 뿐이야



짝,짝,짝,짝 무표정한 얼굴로 지원이 천천히 박수를 쳤다.
그제야 멤버들도 표정이 밝아지며 박수를 치고 서로 감탄해 했다.
한술 더 떠 도준은 입이 찢어질 정도로 행복에 겨운 웃음을 지으며 
쌍 따봉까지도 날렸다.

"근데, 몇 살이에요? 중학생인가? 노래는 괜찮은데... 키가 영..."

서진의 작은 키를 조롱이라도 하듯 지원이 말했다.

"162.... 열일곱...."

쭈뼛대며 소심하게 서진이 대답했다.

"162? 대표님, 이건 아니지 않아요? 이래서야 그림이 안 나오잖아..."

맞는 말이었다. 물론 그 말은 상대를 깎아내리려 한 말이었지만,

찬수의 키는 187cm였고 172cm의 시환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180cm의 기럭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서진은 이들과의 갭이 컸다.
분명 무대에 서거나 단체 샷을 받게 된다면 그림이 안 나올 게 분명했다.

"뭐... 키야 신발 같은 걸로 커버하면 되지. 안 그래? 하하하."

그렇다. 높은 신발을 신으면 10cm는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멤버들도 생각을 해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부른 노래. 그거 혹시 니가 만든 곡이야?"

아까부터 서진이 부른 노래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있던 찬수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서진이 대답 대신 고개만 작게 끄덕거렸다.
'작곡까지 한다고?' 거기다 노래까지 좋았으니 멤버들이 더 놀라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저스... 오, 지저스...' 이런 복덩이를 얻었다는 사실에 도준은 자신도 모르게
신을 찾고 있었다.

"춤은? 춤도 한 번 춰봐."

지원이 꺼낸 말에 춤은 얼마나 잘 출지, 모두들 기대 반 호기심 반의 얼굴로
서진을 바라봤다.

".......하기 싫은데."

"??............."

서진의 한마디에 멤버들이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이 팀과 함께하겠다고 서진은 말한 적이 없었다. 
오늘은 그저 도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거절하기 위해 따라온 것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예정에 없던 노래를 한 곡 불렀을 뿐, 더 이상 그들 앞에서
광대 짓을 펼치고 싶지는 않았다.

"아저씨, 저 집에 갈래요."

서진이 굳은 표정으로 도준에게 말했다.
그러자 멤버들 모두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제각기 웅성댔다.


그날 밤. 불 꺼진 방 안 침대 위에 서진이 누워있었다.
자려고 누웠지만 쉽사리 잠이 들지 않자, 자세를 옆으로 돌려 누웠다.
서진의 머릿속에는 자꾸만 오늘의 일들이 생각이 났다.

멤버들이 열정적으로 안무를 하던 모습,
자신의 노래에 기뻐하고 감탄하던 멤버들의 모습,
함박웃음을 지으며 행복해하던 도준의 모습들과
집에 가겠다던 자신을 실망한 얼굴로 바라보던 모두의 모습까지....

후.... 서진이 다시 몸을 틀어 바로 누웠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데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시절 아빠의 기타 소리에 맞춰 꼬마 서진은 노래를 불렀다.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아빠의 앞에 서서 마치 나의 실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우리 딸 가수 될 거야?"

"응! 최고로 유명한 가수!"

아빠의 무릎에 앉아 가수가 되겠다고 말했던 서진이었다.


'아빠....' 서진은 아빠가 곁에 있었다면 자신이 어떡해야 할지 묻고 싶었다.
어릴 적 아빠에게 기타를 배울 때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그렇게 많은 생각과 고민에 빠져있는데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에서 
문자 소리가 울렸다.

'너무 내 욕심만 부렸던 것 같아 미안하구나.'

도준의 문자였다.
문자를 확인한 서진은 핸드폰을 다시 머리맡에 내려놨다.
후....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핸드폰을 집어 문자를 보냈다.

'지금 잠깐 만나요.'


밤늦은 아파트 놀이터. 서진과 도준이 나란히 그네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침묵은 꽤나 이어졌고 애꿎은 그네만이 끼익 끼익 소리를 내었다.

".....죄송해요."

서진이 겨우 말을 꺼냈다.

"아니야. 니가 왜 죄송해. 그렇게 생각하지 마."

"모르겠어요. 제 마음이 어떤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도준은 후회했다.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서진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보자 안쓰러웠다.

"이렇게 소녀 같은데 남장을 하라고 했으니... 아저씨가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

도준이 웃으며 말하자, 서진도 따라서 미소를 지었다.

"제 꿈이요.... 사실 가수가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젠 꿈이 없어요. 어차피 꿈은 꿈일 뿐이니까요."

서진의 말은 열일곱 소녀가 할만한 말은 아니었다.
이리저리 넘어지고 깨지며 인생을 배운 사람들이 하는 그런 말이었다.
도준은 어쩌면 단순히 어른 흉내를 내려고 하는 말인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래. 니 말이 맞아. 꿈은 꿈일 뿐이지. 그런데 반대로 꿈은 꿈일 뿐이니까
그저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

생각지도 못한 도준의 말에 서진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멍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서진에게 도준이 싱긋 웃어주었다.


다음 날 오후 연습실.
멤버들이 소파에 편하게 앉아 어제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잘하는 건 알겠어. 근데 안 할 거면 뭐 하러 여기까지 온 거야?"

"내 말이. 생긴 것도 기집애 같더니 '집에 갈래요.' 참나...."

주형의 말에 지원이 비꼬며 맞장구를 쳤다.

"솔직히 여기 논두렁에 컨테이너 박스를 보고 있고 싶겠냐고."

으.... 소리를 내며 지원이 기지개를 켜듯 허리를 뒤로 젖히다 아차 싶었는지 
시환을 슬쩍 쳐다봤다.
그 말에 당연히 기분이 얹짢았지만 시환은 애써 내색하지 않고 있었다.


'똑, 똑, 똑.' 이때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모두가 반사적으로 문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서진이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