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각자의 이유
연습실로 들어 서진을 멤버들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에 쭈뼛대던 서진은 결국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없이 인사를 했다.
"뭐 놓고 간 거 있어? 왜 다시 왔는데?"
"......해보려고."
지원의 말에 서진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뭐라는 거야. 크게 말해봐."
"아니, 일단 여기로 와서 앉아."
주형이 일단 지원을 말리며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시선을 내리깔고 천천히 소파로 걸어와 서진이 앉았다.
소파에 앉은 서진을 모두가 말없이 주목할 뿐이었다.
"나, 해보려고. 아니, 해보고 싶어. 춤은 못 춰. 제대로 배워보거나 춰본 적이 없어.
어제는 이런 적이 처음이라 그랬어. 미안해...."
여전히 시선을 깐 서진이 마치 연습장에 적어 놓은 걸 읽듯 빠르게 할 말을 전했다.
그리고 겨우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그들은 어떡해야 할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기에 바빴다.
"일단 알겠으니까 기다려봐. 대표님하고 얘기는 된 거야?"
주형의 말에 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주형이 핸드폰을 꺼내 도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간이 지나, 회사에 도착한 도준이 서진과 함께 사무실에 있었다.
냉장고에서 박카스를 하나 꺼낸 도준이 뚜껑을 따 소파에 앉아 있는 서진에게
내밀었다.
서진이 박카스를 받자 도준이 앞에 마주 앉았다.
"마셔."
박카스를 들고만 있는 서진에게 도준이 말했다.
그다지 박카스를 좋아하지 않는 서진은 입을 살짝 대고는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고맙다 서진아. 다시 와줘서."
도준이 따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저씨, 제 꿈이 왜 가수였는지 아세요?"
"응? 글쎄. 왜 꿈이 가수였을까?"
"제가 노래를 부르면 아빠가 좋아했거든요."
서진이 추억에 잠기는 얼굴로 대답했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그 시절, 서진의 가족은 작은 원룸에 살았다.
일용직이었던 아빠는 늘 고된 삶에 찌든 얼굴로 집에 들어오곤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서진은 가난과 아빠의 힘듬을 저절로 알고 있었다.
퀴퀴한 땀 냄새. 검게 그을린 얼굴. 흙과 기름으로 얼룩진 옷들.
아빠가 퇴근해 집으로 오기 전까지 서진은 그날 부를 노래를 열심히 연습하곤 했었다.
자신의 노래에 웃음 짓는 아빠가 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때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고 노래를 많이 불렀기 때문에 서진은 지금의
노래 실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아빠는 이름 없는 작은 밴드에서 활동 했을 정도로 음악을 사랑했고
가끔 밤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일들도 있었다.
그때 아빠의 노래하는 모습에 반한 엄마가 아빠를 꼬셔서 결국 서진을 낳은 것이었다.
"지금은 안 계시니 아빠가?"
".....사라졌어요. 아니, 엄마 말로는 도망친 거래요."
도준의 질문에 서진은 추억에서 벗어나 이제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감정 없이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운전 중인 도준과 그 옆에 서진이 타고 있었다.
오디오에서는 역시나 오렌지 카스텔라의 노래가 나오고 있었고 노래를 듣고 있던
서진은 궁금증이 생겼다.
"아저씨, 오렌지 카스텔라는 왜 망한 거예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도준은 어떻게 말할까 잠시 생각을 했다.
"음.... 아저씨가 능력이 부족해서?"
물론, 도준의 능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다만 오렌지 카스텔라가 망한 게 된 것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일을 도준은 애써 말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어린 서진에게는 더욱.
도준의 말에 서진은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도준의 말에서 어떤 다른 이유가 있을 거란 느낌을 받았지만 서진은 굳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를 테니까 걱정하지 마."
"못 믿겠는데."
서진의 한마디에 자신 있어 하던 도준이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괜히 머리를 긁적여 보고....
"근데.... 저 언제까지 숨겨야 해요? 여자인 거. 그냥 말하면 안 돼요?"
"어.... 그러니까.... 네가 일단 애들과 좀 더 신뢰를 쌓고 난 다음에...."
"더 싫어할 거 같은데. 속였다고."
도준도 몇 번이나 서진이 여자라는 사실을 멤버들에게 말하려고 했지만 정작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반응을, 그들의 불만을 어떻게 수습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타이밍이 오면 반드시 진실을 말하리라 그저 다짐만 할 뿐이었다.
"곧 해야지.... 곧."
도준이 애써 웃으며 대답을 끝마칠 때 그들이 탄 차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 입구 쪽에 주차를 마치고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주변은 이미 어둑해진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파트 현관 앞에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서진이 어머니."
도준이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가영은 그저 힐끗 도준을 쳐다보곤 서진의 손을 잡고
서둘러 현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거... 오늘도 무쟈게 아름다우시네."
혼자 남겨진 도준이 큭 하며 웃었다.
"어떻게 보면 볼 수록 밉상이야 아주. 능글능글 웃기나 하고. 어우...."
집으로 들어 온 가영이 진저리 난다는 얼굴로 거실 소파에 앉은 서진에게 말했다.
"그렇게 싫어?"
"그럼. 아주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맘에 안 들어."
"엄마 좋아하는 거 같던데."
"뭐? 너 함부로 그런 소리 하지 마. 꿈에 나올까 무서우니까."
가영의 질색하는 반응에 서진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러자 서진의 웃음에 가영도 덩달아 픽 웃었다.
웬만해서 잘 웃지도 않는 서진이 이곳에 이사 온 후로 한 번씩 웃는다는
사실에 가영은 조금 신기하면서도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 아빠는 도망간 게 아닐 거야. 그냥.... 말 못 할 사정이 있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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