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찬수의 시선
다음 날 오전. 학교 교실에서 영어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중년의 남자 선생님이 칠판에 적은 둔 transition expressions를 가리켰다.
"transition expressions. 말 그대로 전환 표현이다. 그지? 그럼 전환 표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영어 선생님의 별명은 그지선생이었다. 그건 말끝마다 그지?를 붙이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한 수업에서 최고의 기록은 79회로 알려져 있었다.
그지선생이 물었지만 학생들 대부분이 입을 다물었고, 몇몇 나서기 좋아하는
학생들이 답을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창가 쪽 가장 뒷자리 앉은 찬수는 영어책은 덮어 둔 채,
transition을 써놓은 연습장에 transgender, trend, trangks등 라임을 써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곱슬머리를 한 콘다 라는 친구가 영어책 모퉁이에
그지선생의 그지 횟수를 바를 정자로 표시했다.
현재까지는 37회의 그지를 사용한 상태였다.
라임을 써보던 찬수는 다른 단어들이 생각이 나지 않자 짧게 한숨을 쉬곤
볼펜을 탁하고 내려놨다.
팀에서 랩과 안무를 맡고 있었지만, 사실 찬수는 춤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리더인 주형처럼 직접 랩가사를 쓸만한 실력은 되지 못했다.
수업이고 라임이고 재미가 없는 찬수가 창밖을 보았다.
그러자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이 농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켜보던 찬수는 당장이라도 교실에서 뛰쳐나가 농구를 하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밀려왔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현실에 애써 욕망을 억눌러야 했다.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린 찬수는 고꾸라지듯 책상에 엎드려 버렸다.
"Nevertheless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그지?"
엎드린 채 눈만 껌뻑이던 찬수는 그지선생의 말에 꽂힌듯 속으로 따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은 찬수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그지선생은 계속해서 그지를 남발하며 수업을 이어갔다.
얼마 후, 점심 시간이었다. 급식을 먹은 찬수와 콘다가 급식실을 빠져나왔다.
"81번, 드디어 그지선생의 기록 경신! 큭큭큭. 졸업 전까지 100번 가즈아-!"
한껏 흥분한 목소리로 콘다가 그지선생의 기록 경신을 떠들어 댔다.
찬수는 아까부터 줄곧 이어지는 콘다의 그지선생 이야기에 지쳐있었다.
"야, 그만 좀 해. 그게 재밌냐?"
"그럼 그게 안 재밌냐? 임마, 이런 게 팩트로 쓰일 때 역사가 되는 거야.
하긴 니가 뭘 알기나 하겠냐?"
한심하게 보는 찬수에게 콘다가 깐족거리며 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걸어가는데 건물 구석진 곳으로 향하는 몇 명의 무리가 보였다.
짧고 타이트한 교복 치마와 화장, 염색과 펌, 비싼 메이커의 신발 등,
남녀가 섞여 있었지만 그들은 겉모습만 보아도 일진이었다.
"여-! 송채림이! 한대 꾸지러 가냐?"
콘다가 일진 무리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여자아이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채림이 예쁘장한 외모와는 달리 거침없이 콘다에게 뻑큐를 날렸다.
뭐가 좋은지 큭큭거리며 웃던 콘다가 찬수에게 말했다.
"가자. 한대 빨러."
"됐어. 너나 가."
"에이 새끼...."
콘다가 아쉬운 표정을 짓는 척하더니 주인 만난 똥개 마냥 채림에게 달려갔다.
"채림아- 어디 가느냐- 담배 빨러 가느냐-"
세상 시끄럽게 떠들며 콘다가 채림을 따라 건물 구석진 곳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찬수가 혼자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날 저녁. 연습실에는 멤버들이 한창 안무를 연습 중이었다.
그들과 떨어진 한쪽 구석에는 찬수와 서진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서진이 양다리를 벌리고 앉아 상체를 바닥에 바짝 붙였다.
맡은 편에서 같은 동작을 하던 찬수가 고개를 들어 서진을 보는데 생각보다
유연한 모습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서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게 되었다.
잡티 없이 하얀 피부. 조금은 눈꼬리가 위를 향했지만 쌍꺼풀 없는 큰 눈,
써클렌즈를 꼈을지 모를 까맣고 커다란 눈동자, 오똑한 코, 가느다란 눈썹과 긴 속눈썹,
앙다문 붉은 빛의 입술.
이렇게 가까이서 자세하게 서진을 처음 본 찬수는 예쁘다는 생각이 난데없이 들었다.
그러다 서진이 찬수를 보자 눈이 마주쳤고 찬수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이지?'
찬수는 자신의 행동에 작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일어나. 이 정도면 됐어."
찬수가 일어나며 말하자, 서진이 따라 일어났다.
다음에 뭘 하나? 서진이 찬수를 빤히 바라보자 찬수는 이상하게도 서진의 얼굴을
보는 게 어렵게 느껴졌다.
갈 곳을 잃은 찬수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자,잠깐 쉬었다 하자."
찬수가 말을 하곤 혼자 연습실 밖으로 나가자, 서진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10분 했는데....?'
'생각+ > 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웹소설) 논두렁 아이돌 - 9화 마음을 열어 봐 (4) | 2025.08.07 |
---|---|
(웹소설) 논두렁 아이돌 - 8화 각자의 이유 (5) | 2025.08.05 |
(웹소설) 논두렁 아이돌 - 7화 꿈은 꿈일 뿐이야 (6) | 2025.08.01 |
(웹소설) 논두렁 아이돌 - 6화 너의 실력을 보여 봐 (7) | 2025.07.31 |
(웹소설) 논두렁 아이돌 - 5화 논두렁을 가다 (7) | 2025.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