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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긴 생각

(웹소설) 논두렁 아이돌 - 13화 성공시대

by °마로° 2025. 8. 25.

 

 

 

13화. 성공시대

 



그날 저녁 녹음실. 연습실 옆에 붙은 작고 조촐한 녹음실 부스에 서진이
들어가 있었다.
방음유리 밖으로는 녹음 장비 앞에서 서진을 모니터링 하고 있는 도준이 보였다.

"자, 아까 시작한 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최대한 힘을 빼고."

도준이 마이크에 대고 말하자 헤드셋으로 듣고 있던 서진이 힘을 빼보려 '후....' 
깊은 심호흡을 했다.

"자, 간다.... 큐."

큐 사인이 떨어지자 헤드셋으로 반주를 듣던 서진이 노래를 시작했다.

'I see you. 네 눈에 비친 내가 보여. 제발 눈을 감아 줘 내가 나를 볼 수 없게.

나 역시 눈을 감아 네가 너를 볼 수 없도록.'

짧은 파트를 마무리한 서진이 마이크에서 얼굴을 떼어내고 도준의 반응을 살피자,
도준이 웃으며 따봉을 날렸다.

"좋아. 아까보다 훨씬 좋아졌어."

그 말에 서진이 기쁜 듯 작게 미소를 지었다.
사실 혼자서 수없이 노래를 불러보고 녹음도 해보았지만 누군가로부터 피드백을
받고 전문적으로 노래를 불러본다는 것에 서진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금 느낌 잊지 말고, 이제 다음 파트 가보자."

"네."

도준이 다시 녹음 장비를 세팅했다.


잠시 후, 녹음을 마친 서진이 녹음실 밖으로 나왔다.
녹음실 안이 제법 더웠던 탓에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어느새 다가온 도준이 수고했다며 냉장고에서 갓 꺼내 온 박카스를 서진에게 건네며 말했다.

"잘했어, 잘했어. 처음치고 엄청 잘한 거야. 오늘은 단순히 곡을 익히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앞으로 계속 연습하면 더 좋아질 거야."

"네.... 감사합니다."

서진이 박카스를 받고서는 할 말이 있는 듯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자 도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무슨 할 말 있어?"

"이 노래.... 아저씨가 만든 거죠?"

"어, 그렇지.... 왜?"

"저 이 노래 좀 가져가도 돼요?"

"어.... 그래. 당연히 되지. 근데.... 뭣 하러?"

"그냥 좀.... 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서진이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다음 날 저녁 녹음실. 한곳에 모인 멤버들과 도준이 어제 서진이 가져갔던 노래를
듣고 있었다.
멜로디는 좋았지만 올드했던 곡의 분위기가 한층 깔끔하고 세련되게 바뀌어 있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젯밤, 집으로 돌아간 서진이 자신의 컴퓨터와 장비로 곡을 믹싱한 탓이었다.
단순히 호기심과 재미로 곡을 이렇게 건드려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해본 것이었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오디오에서 뿜어져 나오던 노래가 끝이나자 모두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서진이 음악에 대한 재능이 있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지만 단순히 기타나 악기
정도로 노래를 만들 줄 알았지 믹싱까지 척척 해낼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냥 해봤는데.... 심심해서."

서진이 쑥스럽게 말을 꺼내자, 멍하니 있던 도준이 영혼이 빠진 투로 말했다.

"......그만 하자."

"네....?"

자포자기한 것 같은 도준의 목소리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연습 그만하고.... 오늘은.... 회식이다-!!"

도준이 버저비터를 성공시킨 사람처럼 한순간에 표정이 돌변하며 회식을 외쳤다.
그러자 '우오오오-!!' 모두가 굶주린 짐승의 소리를 내질렀다.


시간은 흘러, 컨테이너 귀퉁이에 모여 앉은 멤버들 앞에서 도준이 고기를 구웠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도준으로 인해 그들의 회식은 늘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딱히 이런 회식이라고 누구 하나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아직은 머리가 굵지 않은 10대들이라 그럴지도 몰랐다.

숯불 앞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도준이 고기를 구웠지만 성장기 아이들의
흡입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잘 먹는 아이들을 보니 도준의 입가에는 미소가 절로 났다.
도준이 일회용 접시에 다시 고기를 한가득 구워 간이 테이블 위에 놓아주자, 
모두의 젓가락이 경쟁하듯 모여들었다.

서진은 고기만 굽는 도준이 안쓰러워 종이컵에 몇 점의 고기를 담아 
도준에게 다가갔다.
별거 아니지만 익숙하지 않은 행동에 서진은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서진이 머쓱하게 고기가 담긴 종이컵을 내밀자, 도준이 활짝 미소 지었다.
그리곤 눈을 감고 입을 크게 벌렸다.
하지만 기다려도 고기가 입으로 들어오지 않자 눈을 떴고 서진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도준이 괜히 쩝쩝대며 입맛을 다셨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주변은 어둑해져 있었고, 배불리 고기를 먹은 그들이 모닥불
주위로 둥글게 앉아 있었다.
어디서 얻어 왔는지 모를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늘어지듯 앉은 그들과 타닥거리며
타들어 가는 장작의 모습이 모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우리 성공하면, 좋은 곳에서만 회식 시켜줄게. 이런 논두렁 말고.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다들 참아 줘."

"지금도 충분히 좋은데요? 일류 요리사도 있고.... 공기 좋고, 분위기도 무르익고."

진심이 담긴 도준의 말에 주형이 대답하곤 미소 지었다.
한동안 모두가 타들어 가는 장작을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마치 소원을 빌듯.

장작불에 아른아른 거리는 서진의 얼굴을 옆에 앉은 찬수가 고개만 살짝 돌려 보았다.
그리곤 다시 한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생겼지?'

뭔가 시선이 느껴진 서진이 고개를 돌리자 찬수가 모닥불로 시선을 돌렸다.

"근데, 대표님. 우리 팀 이름은 정하셨어요?"

타닥거리는 장작 타는 소리에 지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모두가 도준을 주목했고 도준은 씩 웃었다.

"이미 정해뒀지."

도준의 말에 모두가 기대하는 얼굴로 변해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이 치열한 가요계에서 얼마나 많은 가수들이 이름도 모르게 사라졌나. 
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우린 기필코 성공할 것이며, 이 시대의 아이콘이 될 것이다. 우리 팀의 이름은 바로.... 성공시대!"

"................."

 

유치한 연설문을 읽듯 도준이 거창하게 팀명을 발표했지만,
누구도 충격에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몇몇은 도준이 또 시답잖은 장난을 치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도준은 진지했고, 그들은 이때 알지 못했다.
자신들의 팀명이 정말 성공시대가 될 것이라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