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내게 손대지 마
연습실을 빠져나온 찬수가 컨테이너 건물 구석진 곳에서 전자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를 피우며 조금 전의 상황을 생각하니 자신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미친....'
하마터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의심할 뻔했다.
왜 남자가 이뻐 보였는지, 왜 분 냄새가 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찬수는 생각했다. 분명 서진은 2차 성징이 아직 안 왔다고.
그래서 목의 울대도 나오지 않았고 목소리도 미성에 가깝다고.
키도 또래보다 많이 작은 편이니까 17세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어제 도준을 찾아갔던 일을 떠올렸다.
'니가 내일부터 서진이를 좀 맡아서 가르쳤으면 한다. 애가 착한데... 좀 사회성이 없으니까
최대한 친절하게. 알겠지? 친오빠처럼. 아니,아니. 친형처럼.'
어제의 대화를 떠올리던 찬수는 그만 픽- 웃고 말았다.
'하긴.... 대표님도 헷갈릴 정도니까.'
찬수가 전자담배를 주머니에 넣고 정신 차리자며 깊게 숨을 들이켰다.
연습실로 돌아온 찬수가 서진에게 가장 기본적인 춤의 스텝들을 알려줬다.
따라 하는 서진은 조금 어설퍼 보이지만 나름 흉내를 내는 수준이었다.
그걸 본 찬수는 이 정도는 할 수 있구나 생각하곤 조금 더 어려운 스텝을
보여주고 시켰다.
그러자 역시나 서진의 몸이 꼬이며 동작이 되지 않았다.
기대가 컸던 걸까? 찬수가 피식 웃었다.
"자, 여기서 발을 이렇게. 그리고 다시 원래대로."
찬수가 천천히 다시 동작을 알려주자 서진도 천천히 동작을 따라 했다.
하지만 역시 무리인지 결국 다리가 이상하게 엉켜버렸다.
결국 가까이 다가간 찬수가 쪼그려 앉아 손으로 엉켜버린 서진의 다리를
빼주며 말했다.
"턴을 하고 왼쪽 다리를 빠르게 빼줘야 돼."
말하곤 찬수가 고개를 들어 서진의 얼굴을 올려봤다.
그러자 서진은 사색이 된 얼굴로 몸이 굳어 있었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찬수의 눈이 커졌다. 몸을 일으키는데 다시 한번 분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괜찮아? 왜 그래, 어디가 안 좋아?"
"아,아니야.... 그냥...."
걱정스레 묻는 찬수의 말에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진이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서진은 손까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말해 봐. 괜찮으니까."
찬수가 손으로 서진의 어깨를 잡자, 반사적으로 서진이 찬수의 팔을 뿌리쳤다.
".........."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찬수가 그저 멍하니 서진을 바라보았다.
"손.... 내 몸에 손대지 마. 부탁이야...."
겁먹은 듯 몸을 웅크린 채 경계하는 눈빛으로 서진이 말했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찬수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날 밤, 찬수의 집 근처 공원. 서진이 벤치에 앉아 찬수를 기다렸다.
첫 연습을 하는 날이었지만 서진은 고작 1시간도 연습을 못 하고
도망치듯 집으로 오고 말았다.
서진은 그런 자신이 부끄럽고 미웠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결국 찬수를 만나러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그림자가 서진의 곁으로 다가왔고, 그만큼이나 커다란
찬수가 서진의 옆에 앉았다.
어색한 두 사람의 거리만큼이나 두 사람 사이에는 공간이 생겨있었다.
"....미안해."
서진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생각보다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찬수를 서진이 빤히 바라봤다.
"왜 그랬는지.... 안 물어?"
"이유가 있었겠지. 안 궁금해."
"............"
서진은 차라리 왜 그랬냐? 내가 우습게 보이냐? 이런 말들을 찬수가 해주길 바랬다.
화가 난 상대에게 사과하는 것이 훨씬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찬수는 화를 내지도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사실 이유를 묻더라도 서진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춤을 추려면 너에게 손을 안 댈 수는 없어. 연습이든 실전이든. 그러니까 계속
우리와 함께하고 싶다면, 너 스스로 이겨내야 해."
"....응. 고마워."
'스스로 이겨내야 해.' 서진은 찬수의 조언에 작은 힘이 났다.
그리고 아무것도 묻지 않은 것에 대해 고마웠다.
"근데.... 너 왜 계속 반말이야?"
"응? 아.... 하하하...."
찬수의 말에 서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다음 날, 아침. 학교 정문 앞에 지각을 한 학생들이 모여있었다.
겨우겨우 지각을 면한 찬수와 콘다는 안도하며 뒤돌아 그들을 바라봤다.
"와.... 진짜 0.1초 차이. 이 맛에 내가 칼 등교하지. 크크크."
쾌감에 절은 얼굴로 콘다가 말하고 웃었다.
하지만 찬수는 콘다를 기다리다 지각할 뻔했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이제 너 안 기다려."
찬수가 콘다를 버리고 혼자 걸어가자, 콘다가 급히 따라붙었다.
"야야, 급똥인데 어떡하냐. 중간에 짜르냐? 어? 짜르냐고."
3학년 교실로 가는 지름길은 담장 근처의 화단이 있는 길이었다.
찬수와 콘다가 그 길로 걷고 있는데 책가방이 담장 밖에서 안으로 떨어졌다.
이어서 담장 위로 채림의 얼굴이 불쑥 올라오더니 짧은 치마를 입은 다리를 한 쪽씩
능숙하게 담 위로 넘기며 학교 안으로 넘어왔다.
"아이고 놀라라. 채림아 너 방금 빤쮸 보였다. 빨간색."
응큼하게 웃으며 콘다가 놀리자,
가방을 주워 든 채림이 시크한 얼굴로 뻑큐를 날렸다.
"블랙. x신아."
채림이 슬쩍 찬수를 쳐다보았지만 곧바로 그들의 곁을 지나쳐갔다.
"....졸라 예쁘지 않냐? 졸라 까리해."
멀어져가는 채림을 보며 사랑에 빠진 듯한 얼굴로 콘다가 말했다.
그리고 채림에게서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을 땐 이미 찬수는 사라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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